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항암식단은 병자를 부양하는 사람에게 버거운 미션이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도 않는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돌봄의 수요가 '딸이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라든가 '딸 바보'를 불러냈듯이, 먹이고 돌보기 위해서 집에 붙박이로 상주하는 사람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아마 내가 잘못된다면 어머니는 옆집 엄마의 친구가 그랬듯이 당신을 탓하며 괴로워할 테다. 지금도 암환자들이 모이는 카페의 항암식단 인증 사진 댓글창에는 엄마들과 딸들의 칭찬과 자책이 줄줄이 달린다. 정성과 헌신의 이 지독한 성별성. 밤낮을 끓이고 기름을 걷어 다시 끓인 곰탕이 병을 낫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걸 과학적 지식이 증명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다. 우리에게는 병원에서 나눠 준 <면역 저하 환자를 위한 식품 섭취 지침> 못지않게 비전이 필요하다. 각개전투하듯 해다 먹이는 항암식단이 아니리 제도와 관계망을 통해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상상력 말이다.

🔖 생존에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100여 일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부대끼며 살았던 구체적인 일상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출산을 앞둔 지인은 제대혈을 기증하겠다는 결심을 들려주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등록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여자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전해 듣고 함께 떨면서,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들 곁으로 돌려보내 준 익명의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타인의 선의가 또 다른 사람들의 선의로 번져가는 풍경들. 그래서 수많은 우연과 인과의 총합이 또 누군가를 요행처럼 찾아가 기적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들. 근본적으로 삶도 세계도 무의미하다는 공허한 불안감은 이렇게 어떤 의미에 기댄 다른 의미들의 연쇄로 채워진다. 조금 더 공들여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나마 나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 모(冒)는 복면을 쓴 얼굴에 눈을 내놓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사람은 얼굴만 가리면 어떤 일이든지 감행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해설이 붙어 있었지만, 나는 유일하게 감추지 않고 열려 있는 눈 목(目) 자를 오래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며 길을 나선다. 늘 용맹할 수는 없고 두려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마주하며 흔들리기 일쑤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 오래 견딜 수 있다. 한편 모든 사람이 부조리에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삶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안팎을 따질 수 없는 일들로 험난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도 견디고 다만 눈 앞을 응시할 뿐이다.
(...)
그렇게 남게 된 장면을 우리는 더러 증언이라고 부른다. 나 같은 사람의 증언도 모험가가 될 수 있을까. 매일매일이 종래와 다른 성격의 험난함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채워지면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무릅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 했다. 저절로 안부가 묻고 싶어졌다. 아무도 모험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저마다의 일상을 향해, 서간문의 형식을 빌려서.
여기는 잠시 구름이 갰습니다. 저는 고단하지만 그 역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무릅쓰며 오늘을 살고 있나요.

🔖 앞서 <병자를 위한 올바른 대화 매뉴얼> 같은 것을 만들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웃들은 나를 살피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항암 정보가 난무하는 건강 중심 사회에서 혈액암 병자가 사는 법을 배우고 함께 수다 떠는 법을 익혀갔다. 나는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손톱 마디를 길러내는 동안 폐를 끼치고 뻔뻔해지기도 하면서 내 방식대로 이들에게 갚을 방법을 배웠다. 숨길 것도 없었고, 과장할 것도 없었다. 엉망으로 나온 손톱처럼 불규칙적으로 도착하는 사건 앞에 말끔히 잘린 손톱과 함께 거실의 초록색 단지 아래에 넣어두었다.